사례 1
최OO씨는 젊고 유능한 건축설계사이다. 아마도 지금의 입원이 다섯번째 쯤 되는 것 같다. 한 달전 퇴원 무렵, 새 생활에 대한 각오를 나에게 다짐했는데 부인 이야기로는 퇴원을 한 후 이틀째부터 음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다섯 살이 된 어린 딸과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최OO씨의 음주 후 행동은 점점 거칠어져 최근에는 물건이나 칼등의 흉기를 들고 가족들을 위협했다가도 나중에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 증상까지 보인다고 한다.
최OO씨의 아버님도 과거에 최OO씨와 똑같이 음주문제가 심각하였다고 한다. 최OO씨는 알코올중독자녀(ACOA)로서 성장했던 것이다. 아마도 아버님의 이러한 음주행동이 어린시절의 최OO씨의 무의식속에 잠재해 있다가 최OO씨가 성인이 되면서 최OO씨의 음주행동으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최OO씨는 술 때문에 직장도 없는 상태이고 젊고 착한 부인은 최OO씨의 반복된 입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절망하고 있었다. 최OO씨의 부인은 직장을 구해 가정생활을 꾸려보려고 노력하지만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다. 최OO씨의 부인은 어린 딸과 함께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OO씨의 어머님은 최OO씨의 음주문제를 감싸주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으며 누님이나 다른 형제들은 부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원망의 시선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심각한 가정의 위기에 직면하여 서로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 원망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최OO씨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장시간 가족면담을 하였다. 최OO씨의 반복적인 입원으로 인한 각자의 절망들이 표출되어 논의 되었다. 환자 자신의 절망, 가족들의 절망, 또한 치료진의 절망에 대한 치료진과 가족 모두의 진지한 마음으로 서로가 절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 하였다. 진정한 회복은 이 모든 절망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 절망들을 이기고 최OO씨와 그 가족들이 함께 새로운 생활로 나아가야 할것이다. 그렇게 회복의 문턱으로 들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일 것인가? 과연 최OO씨와 그 가족들이 이 절망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한 경우는 이들이 회복의 기쁨을 맛보기 어려울 것 같다. 하늘은 절망과 시련을 주되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는 말에 희망과 기대를 가져본다.
사례 2
김OO씨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복수와 황달 증세가 심해서 OO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복부 컴퓨터 촬영사진에 대한 복사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OO씨를 처음 알게 된것은 93년도 였다. 공직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주로 지방의 농가 주민들과 접촉을 갖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김OO씨가 주로 하는 일은 담뱃잎등의 농산물에 대해 정부가 매입을 하는 업무 분야였다. 김OO씨는 대다수의 알코올의존환자들과는 달리 스스로 폐쇄된 정신병동으로 입원을 원할 정도로 본인이 음주를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있었다. 그러나 한동안 단주생활을 잘 하다가도 농산물 매입 업무가 시작되기만 하면 주민들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또 다시 음주를 하곤 하여 수일씩 여러 번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평소 김OO씨는 체격이 좋고 간 기능에 약간 이상을 보이는 소견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몸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김OO씨가 입원을 했을때는 이전과는 달리 황달증세가 아주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음파 검사와 복부촬영을 실시해 본 결과 간으로부터 담즙이 내려오는 담도가 확장되어 있는 등 위험한 소견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어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그곳에서 정밀 조직 검사를 실시한 결과 담도암으로 판명이 되었고 수술은 어려운 상황이다.
김OO씨는 이제 50대 초반의 나이로 한참 직장과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기인데 결국은 술로 인해 성실하고 사회적으로 능력이 있는 한 사람이 암이라는 질병으로 희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부인도 성격이 온순하고 순종하는 형으로 원만한 가정을 이끌고 있었다. 계속 눈물을 흘리며 애처로운 목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는 부인의 심정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
